082. 제철 행복
김신지 지음 / 인플루엔셜
[책 읽고 느낀 점]
계절의 변화를 통해 삶의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특히, 제철 음식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자연과의 연결을 느끼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이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소중해지는 만큼, 이 책은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다. 각 계절마다 느끼는 감정과 그에 맞는 풍경과 음식의 조화를 통해 삶의 풍요로움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책 속에서 건진 문장]
내게 입절기는 늘 ‘배웅’과 ‘마중’의 시간이다. 입춘은 떠나는 겨울을 시간 들여 배웅하고, 다가오는 봄을 마중 나갈 때라고 알려준다.
_ p.24
옛사람들이 연중 가장 긴 밤을 지나 낮이 다시금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를 ‘하늘의 봄’이라 부르고, 그 후 햇볕이 땅에 차곡차곡 쌓인 다음 찾아오는 입춘을 ‘땅의 봄’이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_ p.25
그러고 보면 ‘기다린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봄이다.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기다릴 수 있지만 그 마음은 어쩐지 혼자에 가깝고, 함께 기다리기에 좋은 것은 역시 봄.
_ p.36
우수의 변화가 가장 반가운 것은 땅이다. 기온이 오르면 겨우내 쌓여있던 눈과 얼음이 녹고, 하늘에서 내리던 눈도 비료 변해 스며든다. 이렇게 스며든 물은 흙 속에 남아 있던 한기를 몰아내며 땅에 온기가 돌도록 한다. 이제부터는 새싹의 차례다. 아래로는 뿌리를 뻗고 위로는 포슬포슬 부드러워진 흙을 밀어내며 기지개 켤 힘을 낸다. 우리가 마침내 흙을 뚫고 올라온 새싹의 정수리를 보게 되기까지, 땅속에선 봄의 일들을 부지런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_ p.38
나에게 봄은 이것으로 온다, 말할 수 있는 봄나물을 하나쯤 품고 사는 건, 새봄을 맞이하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 있다는 건, 누가 뭐라 해도 봄은 그날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_ p.42
우수의 햇빛은 얼음과 눈을 녹이고, 흙을 쟁기질하며, 새싹이 나올 자리를 터준다. 냉이는 눈이 녹아 스며든 물로 마른 목을 축이며 땅속 깊이 뿌리를 더 뻗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봄나물을 먹는다는 건 그런 계절의 흐름을 느끼며 2월의 봄비와 햇볕을 몸에 들이는 일
_ p.42
이미 봄이 곁에 와 있는데도 봄을 기다린다. 그것은 여전히 겨울을 사는 때늦은 마음이자 어쩌면 봄을 요약해버리는 일인지 모른다. 길게 펼쳐서 바라볼 수 있는 수많은 장면을 접어버린 채로, 하나의 장면만을 봄이라 여기는게 아닐까.
_ p.43
3월 중순에 접어들면 익숙한 곳을 조금만 벗어나도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되니, 왔던 만큼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게 산책이란 걸 알면서도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_ p.63
‘이게 사는 건가’와 ‘아, 이 맛에 살지’ 사이에는 모름지기 계획과 의지가 필요한 법이다. 제철 행복이란 결국 ‘이 맛에 살지‘의 순간을 늘려가는 일.
_ p.85
익숙해서 자주 잊지만 신록은 말 그대로 새로운 초록, 올해 처음 돋은 잎에서 보이는 초록을 말한다. 나무가 늘 한자리에서 계절에 따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도, 우리는 해마다 새로운 나무를 만나고 있는 셈이다.
_ p.107
아이슬란드어에는 ’날씨가 화창하다는 이유만으로 예정에 없이 주어지는 휴가‘를 뜻하는 ’솔라르프리‘라는 단어가 있다. 번역하면 태양 휴일 혹은 날씨 휴가쯤 될까. 이토록 좋은 날씨엔 노동자에게 마땅히 태양 아래서 시간을 보낼 권리가 있다고 인정해주는 말.
_ p.108
작년의 나는 분명 알았는데 올해의 나는 다시 헷갈리는 이름들. 사진과 이름을 대조해가며 맞아! 하고 반가워하거나 틀린 답을 아쉬워한다. 그렇게 즐거운 오답노트를 만드는 것도 입하의 일.
_ p.117
그러니 다짐은 간단했다. ’무언가‘를 보고 ’누군가‘가 생각난다면 바로 연락하기. 망설임이 자랄 틈 없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_ p.128
안부란 정말 별게 아니니까. 편안한지(安) 아닌지(否) 묻는 일.
_ p.131
작은 안부가 자라 마음을 가득 채우는 소만.
아무렴, 안부를 묻기에 좋은 계절이다.
_ p.132
매화와 목련으로 시작해 벚꽃과 라일락, 등나무꽃을 지나 ’입하얀꽃‘들 뒤로 이어지는 장미와 수국, 능소화의 계절. 꽃이 피는 차례를 징검다리처럼 밟으며 계절을 건너기만 해도 제철 기쁨의 목록은 빼곡해질 것이다.
_ p.137
날씨와 계절에 진심인 사람에게 장마는 명확한 절취선이다. 대한민국의 여름을 모기가 있는 시기와 없는 시기로 나누는. 장마철 군데군데 생기는 물웅덩이는 장구벌레들의 서식지가 되고......
_ p.138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이 멋스러운 담양 관방제림에 가서 평상에 앉아 비빔국수도 먹고 싶고
_ p.145
사라져가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할머니의 역할이라면 나는 이미 할머니인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으로 시작되는 얘기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 긴 시간을 보기에 지금을 살 줄 아는 사람. 언제까지라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_ p.156
비 내리는 날에 몸과 맘이 쉽게 축축해지는 사람도 ’오늘 ○○을 위한 완벽한 날씨네‘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기분 전환이 되지 않을까. 비를 멎게 할 순 없어도 언제든 좋아하는 걸 먹게 할 수 있다는 다행.
_ p.164
어쨌든 그을린 얼굴과 팔뚝은 우리가 이 여름을 사랑했다는 증거일 테니까.
_ p.181
다산의 둘째 아들이자 조선시대 문인인 정학유는 〈농가월령가〉에서 입추 무렵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늦더위가 있다 한들 계절의 차례를 속일 수 없어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바람 끝도 다르다.
_ p.195
결별이 기약 없는 헤어짐이고, 이별이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이라면, 작별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일을 가리킨다. 미리 준비한 인사를 전하고 잘 보내주는 일, 그리하여 다음을 기약하는 일.
_ p.203
가을은 마른 낙엽 위로 툭툭 도토리가 떨어지는 계절. 내가 누구게! 외치는 듯한 그 소리에 바삐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면, 이토록 환한 가을이다. 햇볕에 영글어가는 것들의 고소한 냄새, 알맞게 식은 바람, 저만치 높아진 하늘, 종일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구름……. 제철 숙제를 하러 숲으로 향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 왔다.
_ p.220
식물 세밀화를 그리는 이소영 작가가 쓴 〈계수나무 향기를 맡으며〉라는 글. 2018년 가을, 한 일간지에 게재된 글
_ p.231
10분 단위로 맞춰놓은 기상 알람으로 치자면 이제 더는 미적댈 수 없는 마지막 알람이 울린 셈이니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듯 겨울나기 준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
_ p.248
지금 내 안에 없는 것은 미래에도 일어날 수 없다. 미래는 이미 다, 우리 안에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이 가을은 닫힌 셔터 안쪽에서 봄을 준비하는 시작의 계절일 수 있는 것이다.
_ p.256
가지 끝에 막바지 단풍이 남아 있는 나무들도 눈에 뛴다. 비 한 번 내리면, 어느 날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올해 단풍도 끝이겠지. 보내는 입장에서야 아쉽지만, 나무의 입장에서는 차분히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마른 잎을 다 떨어뜨림으로써 수분과 영양분 소모를 최소로 줄인채 겨울을 나는 것이다.
_ p.265
일만 하다가 한 해가 다 간 것 같고, 기념할 만한 일이 좀체 없었던 것 같지만 얘기하다 보면 알게 된다. 돌아보면 좋은 순간들도 많았다는 걸. 예고 없이 슬픈 일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기다리면 다시 웃는 일도 생기는, 그게 삶이기도 하다는 걸.
_ p.306
연말이 좋은 이유는 분위기에 휩쓸려서라도 희망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 좋았던 일과 좋아지고 싶은 일에 대해 떠들다가 목이 쉬어버리는 날에, 나는 문득 잘 살고 있다고 느낀다. 다시금 기운 내 살아보려고 하는 마음을 느낀다.
_ p.307
겨울은 새로이 보는 계절이다. 거기 원래부터 있었지만 무성한 꽃과 잎에 가려져 있던 것들, 때로는 내가 보려 하지 않아 못 보고 지낸 것들을. 이 무렵의 자연을 두고 흔히 스산하고 볼 것이 없다고들 하지만 채워져 있지 않아서, 여백이 생겨서 비로소 볼 수 있게 되는 것들도 많다.
_ p.313
겨울이 허락해야만 볼 수 있는 것들, 언젠가 꼭 가닿고 싶은 풍경에 무엇이 있는지. 그 목록은 해마다 하나둘씩 늘어나 자꾸 길어지고 좀처럼 줄어들지 않지만, 보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내가 볼 수 있는 ’오늘의 겨울‘을 본다. 어떻게든 오늘 치 즐거움을 찾아내 계절속에 풍덩 뛰어들었던 어린 시절처럼.
_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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